이글은 김보람의
깡통에서 30억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적은 글입니다.
혹시나 계좌의 손실로
기세를 잃으셨거나..
안될꺼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읽고 용기 얻으시길!
글 ! 시작합니다 .
혹시 가장 괴롭고 힘든 순간으로
돌아갈수 있다면..
2024년 의 나는 " 과거의 나에게 "
어떤 말을 전해주고 싶으신가요?
저는 ..
" 보람아 지금은 외롭고 힘들지 ? "
" 잘하고 있어 . 너를 믿어라 .. "
" 너는 이루고 싶은것은 모든것을 이룬다 "
"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꺼야
" 너무 걱정하지말고 . 슬퍼하지마라
" 빛나는 순간이 온다 . 절대 포기하지마라 "
그리고 담담하게 너의 길을 가라.
끝나지 않을것 같은 터널이지만
곧 빛이 보일꺼야..
사랑한다. 힘내라.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핑도네요 ㅎㅎ
저는 꼭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감성적이죠?! 힘없고 . 외로웠던
어린날의 저에게 . 아무도
위로가 될수 없었고
무엇도 희망을 전해주지 않았기에
저는 꼭 말 해주고 싶습니다.
오늘은.. 그냥 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꿈꾸던 인생을 살고 계신가요?
저에게도 꿈많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중학교를 전교 1등으로 입학했고 ..
IQ 는 140을 넘었습니다..
운동을 잘했고 . 친구들 무리가 있었으며..
소도시에서 20년 전에.. 한달에 3000만원을
순수익으로 벌던 자영업자의 아들이였습니다.
부러울께 없었고 . 무서울것도 없었습니다.
원래 가정사의 비극은
아버지의 보증에서 시작되고
저도 확률에 근거 하듯 2000년도
당시 5억이라는 보증이 터지면서 (은마아파트 2억 5천)
하루아침에 집안이 망했습니다..
아버지는 현실을 도피했고.
어머니는 현실을 부정했습니다..
그렇게 사태는 더욱 커졌고
고등학교 2학년때는 이모집에서
방한칸을 얹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
겨울에는 흰 패딩을 입고 침대에 들어가
눈이 뜨면 차디찬 우풍으로 입술이 뜯어지면
작은 피맛과 함께 씁쓸함으로 등교를 했습니다.
" 환경은 인간의 의지를 약탈합니다. "
명석함을 잃고 몇해가 지나니
같이 공부를 하던 친구들은
카이스트 . 연 . 고 . 성균 입성을 하지만
저는 지방에 말도 안되는 대학교를
가게되고 .. 또 그렇게 시간만 흘렀습니다.
돈이 없었습니다.. 보증금을 내줄 사람도..
생활비를 책임져줄 보호자도 없었습니다..
23만원짜리 고시원과.. 알바..
그게 제 삶을 지탱해주는 전부였습니다.
핸드폰이 자주 정지되었고..
컵라면과 . 의미없는 대학생활에 지쳐갈 무렵..
학자금 대출 고지서가 날아왔습니다..
980만원..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배운게 없고..
의미도 찾지못하는 대학생활에서..
나는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빚쟁이가 되는구나..
마지막 발악을 하고싶었습니다.
이렇게 끝내기는 너무나 아까운 인생..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
돈을 벌자..
대학을 다니면서.. 재미없는 대학생활보다
도서관에서 주식책을 보았습니다..
종자돈의 개념을 깨우쳤습니다..
그래 . 군대도 가야되고.. 종자돈도
만들어야하니.. 직업군인을 가자..
제일 빠른 시험일정과 ...
가장 돈을많이 받을수 있다는 (함정수당)
해군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복도 이뻐보였습니다.. ^^;;
그래 이거다.. 바로가자..
번개불에 콩구워 먹듯이
휴학하고 바로 3월 해군에 입대를 하게됩니다.
07 년 3월 입대를하고..
정신없는 초임 생활이 끝나갈무렵
수중에는 약간의 돈과 여유
그리고 주식에 대한 호기심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제 나이 23살때 입니다..